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1)
- 11jcrwtvit
- 2024년 11월 28일
- 4분 분량
아들이 의대입시 준비를 하는 학원 선배 이야기를 하면서 제 앞에서 거듭 분노감을 표시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저더러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였겠죠. 당시만 해도 학원가의 분위기나 언론 보도, 그리고 주변 친지들의 생각들이 한결같이 "공대 가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굶어 죽는 일"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치킨 집 차려야 한다였는데, 나중에는 치킨 집 차리는 사장님들이 너무 많아서 치킨 집이 모두 함께 다 망하고 있는 상황이 되면서 이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게 된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과 나와서 먹고 살려면 의대를 가야한다는 것이 정론처럼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마저 이런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공대를 포기하라는 둥의 소리를 하면 그때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서 제게 엄포를 놓고 있었던 것이죠.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엄마는 자기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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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마플이 다른 이유를 한가지 더 올려주었네요^^. 이미 이야기를 다 적었는데... 별 수 없이 이야기 중간에 삽입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인데.. 공학 공부한 사람들이 다 의사가 되겠다고 하면 나중에 큰 기계를 많이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사장님이 될 본인은 누구를 데려다 기계를 만들게 해야 하나를 미리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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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노래는 기계 만드는 사장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제 얘기입니다.
1980년대 초반, 제가 대학 입학할 당시만 해도, 수능 점수 커트라인은 학과 위주가 아니라 학교 위주였습니다. 가령 연대 치대보다 서울대 공과계열이 커트라인이 훨씬 높았죠.
그리고 문과 출신도 한의대에 지원할 수 있었는데, 대신 적지 않은 감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제 경우 그런 감점을 받고서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할 수 있어서 부모님이 잠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그떄는 한의대 커트라인이 많이 낮았는데, 아마도 그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심하게 동양적 사고에 대한 평가 절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대라는 학벌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였던 시기여서 큰 망설임없이 부모님의 지지로 인문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입학 후부터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계속 밀고 나갔고, 후에 이 문제로 인해 부모님과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공대 출신인 부친이 나중에 저더러 "우리 정씨 내력에 심한 공상기가 있다. 그래서 다들 가난하게 산다. 너가 그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 같다"고 했습니다. 제 앞으로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한 후, 1학년 때 증산도라는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종교 단체에 가입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제가 대학에서 한국 고전을 공부하고 후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을 전공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에서는 문과 계열의 수업 내용 대부분이 서양 사상과 서양 학문의 틀로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식이었는데 심지어 우리 현대 문학은 물론이고 우리 고전과 우리 민족의 종교까지도 서양 사상의 틀로 분석되고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반발심을 가졌던 저는, 결국 우리 전통의 학문의 틀과 우리의 사상으로 서양 문화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내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고집을 가지게 된 것이었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가겠다고 발버둥치기는 하였으나, 제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으면서 하는 공부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서양 사상의 틀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일과 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해야했고, 그리고 제 나름의 사고의 틀로 동양 사상과 동양 종교를 이해해야 했는데, 그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부를 더 진척시키기 위해 안달을 내던 저는 고전 속에 실려있는 허접한 생각들을 알아야 했고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서양식, 혹은 반대편의 허접한 사상과 생각들도 이해해야 하다보니 읽어야 할 책이 남들보다 두배 세배는 많았습니다.
남들 다 한다는 연애나 결혼 준비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대신 틈만 나면 과거, 현재 사람들이 한번 읽어봤을 법한 책들을 구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 청춘 시기는 그게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인데, 저도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들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 책을 한번에 여러권씩 구입을 해서 책상 위에 쌓아두고 읽어나갔는데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속독법이 몸에 익었고, 속독으로 책들을 읽다보니 제 방 책꽂이에는 언제나 새로운 책들이 그득하였습니다. 용돈으로 화장품이나 옷을 구입하지 않고 한번 읽고 버릴 책을 사모아 쌓아두고 지내면서 방은 늘 너저분하게 어질러둔 채로 지내는 저를 보고 모친이 "맨날 다리꼬고 앉아서 책만 읽으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하는 핀잔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선입견이 오래 쌓이다 보니 제가 중년이 된 나이에도 모친은 저더러 "언제 사람이 될래?" 소리가 거침없이 나옵니다. 제 모친은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야하는데, 그도 저도 아니니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한국의 어머니셨으니까요.
저는 쌓인 책들을 중고 책방에 수시로 처분을 해서 책장을 비운 후에 다시 책들을 사서 쟁이는 방법으로 책을 구해 읽었는데, 30대 중반에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책꽂이에 아이 공부책만 잔뜩 꽂혀있었고 제 책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가 한국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되면서 나이 30 후반 줄에 뒤늦게 법무사 공부를 한답시고 관련된 수험서들을 몽땅 구입해서 책꽂이까지 하나 새로 마련해서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하여 아들이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소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아들로부터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 잠시 잊고 지냈던 습관이 다시 도지게 되었는데, 이때 예전에 한번 읽어보려다가 읽지 못했던 책들을 다시 구하기 시작했고, 또 인터넷을 뒤져서 자료들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식들을 서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나이 40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젊은 시절의 패기는 이미 다 꺾여여버렸고, 저는 이도저도 다 그만 두고 자격증이나 따서 돈벌이를 해서 노후를 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는, 밥벌이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동양 사상이나 철학, 한국학과 한국 종교를 공부한답시고 청춘을 허비하고 나니, 남는 것이라고는 현실 생활에서 삶의 기반을 이미 탄탄히 마련한 주변 사람들의 눈칫밥이 전부였다는 것이죠.
저도 자식을 위해서라도 이제 사람 구실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보조를 맞추면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제가 처한 상황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일은, 제 능력껏 자격증을 따서 돈을 버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도무지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이루겠다면서 지독하게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옛날에 공부하던 제 전공분야에 대한 향수가 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적고 더 진척이 안되는 상황에서 제가 당시 느꼈던 심정을 대변해줄 노래 가사를 찾던 중에 아래 영상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격증이나 따서 돈이나 벌자고 시작한 법 공부가 이런 제 갈등을 부채질을 하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시리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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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일을 회상하자니 가슴 먹먹해지고... 말할 수 없는 회한이 밀려와 글이 전혀 진척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 노래를 틀어놓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래 노래를 들려주셨습니다.
다음장에 적혀질 이야기들의 초점을 여기에 한번 맞추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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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를 하려는데, 페이스북 추천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얼마 전 씨네마틱 스톡이 올린 영상도 같이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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